‘자, 나도 이제 블로그로 돈을 벌어보자.’
얼마전 내 생각은 이랬다. 아무개가 블로그로 수억을 벌었다더라, 그 영상을 본 직후였다. 망설임은 입금만 늦출뿐! 나는 재빨리 블로그를 개설했고, 사람들을 혹하게 할 만한 타이틀이나 소재를 내 나름 정리하기도 했다. 좋아, 이 정도면 사람들을 유입시킬 수도 있고 꾸준히만 하면 돈도 꽤 벌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도 잠시.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이나 쓰자, 계획을 수정했다. 면접을 보고 와서였다. 작가로 12년간 일하며, 이런 회사 저런 회사 많이 봤지만 요즘 일부 회사들, 참 (부정적으로) 대단하다. 다음은 그 대단한 회사들 이야기다.
첫 번째 회사.
“글로 사기치는 데 죄책감 없으시죠?”
겉은 멀끔해 보였던 A 회사.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대표와 직원 1인이 보였다. 나는 면접을 보러 갈 때면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데, 그 특유의 시니컬함과 분주함.. 어쩐지 시작부터 불길했다. 내 (소박하디 소박한) 데이터에 의하면 이런 경우, 일하는 환경이 열악할 확률이 58000%...!
아니나 다를까. 마주 앉은 대표는 말했다.
‘글로 사기치는 데 죄책감 없으시죠? 돈은 많이 드릴게.’
물론 워딩은 사뭇 달랐지만, 내 귀에는 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레퍼런스라며 본인들의 작업물을 보여줬는데, 나는 애써 내색을 감췄지만 적잖이 놀랐다. 그들이 보여준 글은 건기식(건강 기능 식품) 관련 블로그 글이었다.
구성은 빤했다. 대개 그렇듯이 초반에 겁을 좀 주며, 이대로는 안 되겠네! 라는 문제 의식을 선사(?)한다. 그런 뒤 그럴싸한 논문 내용을 발췌하여 글의 신뢰도를 높인다. 여기까지는 오케이. 아는 맛이 맛있다고 괜찮은 구성으로 잘 써내려갔군.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들은 전문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한 외국인이 방송에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이미지를 삽입했다. 한글 자막까지 달린 이미지. 그 가짜 이미지를! 그런가 하면 진단서를 꾸며내기도 했다.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하고 방송에서 보여주듯 연출을 한 게 아니라, 작정하고 속이기 위해 그런 이미지를 사용한 것.
대표는 나에게 건 당 80만 원을 줄 테니, 작업이 가능하냐 물었다. 블로그 글 하나에 80만 원이라니, 꽤 괜찮은 조건이었기에 흔들렸지만.. 나는 정신을 다잡고 그에게 물었다.
“이거 법적으로 문제 없나요?”
그는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 생기지, 나에게는 절대 피해가 없을 거라고 확언했다. 나는 이어 물었다.
“그래도 블로그나 콘텐츠는 신뢰도가 중요한데.
이런 글을 올리면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요?”
내 나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정중히 되물은 거였다. 그는 알아들은 것같지 않았지만.
사실 요즘 사업하기 참 어렵다. 운영의 어려움으로 목숨을 끊는 대표들도 많다고 하니, 그들의 선택을 함부로 비난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러면서도 아쉽고 찝찝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두 번째 회사.
“담당 거래처는 150여 군데, 글은 하루 35건씩 대충”
다음은 직원 20명 규모의 마케팅 회사. 내 직전 연봉에 비하면 1,000만 원 넘게 적은 연봉을 제시했지만,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좋은 스템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브랜딩을 포함한 마케팅 능력은 필수라고 생각했으니까. 이곳에 가면 많은 걸 배울 수 있겠지, 했다. 면접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루 7시간도 일하지 않는 회사. 오후 5시면 퇴근하는 회사. 출근까지 30-40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회사 (이전에는 왕복 3시간~6시간을 소화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다만 공고로 사기치는 기업도 있기에 나는 확인했다. 업무가 5시까지 소화할 만한가요? 소화해야 할 글의 양이 어떻게 되나요?
"한 사람당 담당하는 거래처는 150여 군데 정도 되고요.
글은 하루에 35건 정도씩 씁니다.
챗GPT 활용해서 쓰니까 어렵지 않아요."
나는 실시간으로 짜게 식어갔다. 그들이 어떤 퀄리티의 글을 찍어내고 있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팩트 체크까지 다 해가면서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아니지 않나. (만약 팩트 체크까지 우사인볼트급으로 완료! 믿을 수 있는 글을 하루 35건씩 올리고 있는 거라면 정말 죄송하다. 사과드린다.)
그들을 만나고 돌아와서 나는 메타인지를 새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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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밥먹듯이 하는! 챗 GPT 녀석의 답을 고대~로 퍼나를 수 있는 흐린눈의 작가가 될 수 있는가?! -> NO! 그것도 능력인데,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 (시력도 마이너스면서 왜 그런 건 안 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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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들을 적당~히 속히고 달래는! 조련의 끝판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NO! 내 한 몸 조련도 못 하고 있는데 누굴 조련한단 말이냐. (뒹굴뒹굴...) |
그래서 새로 결론을 냈다. 안 될 일에 매달리지 말고, 내 글을 쓰자. 아무도 안 읽어주는 이런 주저리라도 쓰자.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내 선택을 내가 알고, 내가 쓴 글은 남을 테니까. '나만 또' 남은 것 같아도 그 옆에... '낭만도' 한 점 남았으니까, 한잔해! (무알코올 맥주를 힘껏 들며!)